요즘 전 세계 곳곳에서 K-문화가 주목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전통문화와 공예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한때는 낡고 촌스럽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전통 물건들이 이제는 ‘시간이 쌓인 멋’으로 다시 평가받는 분위기다.



그 흐름 한가운데에는 자개가 있다. 과거에는 부유함의 상징이자 혼수의 필수품으로 여겨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대에 뒤처진 장식품처럼 취급되며 자취를 감췄던 자개가 최근 들어 다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진주쉘>
경기 광주시 목동길46번길 37
0507-1406-9050
<광양장도박물관박물관>
전남 광양시 광양읍 매천로 771
061-762-4853
화려함보다는 자연이 만들어낸 은은한 빛, 빠름보다는 손으로 완성되는 느린 과정이 오히려 지금의 감성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반응이다.


경기도 광주에는 자개 공예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영옥 장인이 있다. 그는 5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자개를 다뤄오며, 지금도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작업대 앞에서 보낸다.
자개 공예는 완성된 작품만 보면 섬세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내와 집중이 요구되는 긴 시간이 숨어 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알자개를 수십 장, 많게는 백 장 이상 이어 붙여 판자개를 만들고, 인조 다이아몬드 성분이 들어간 아주 가느다란 실로 문양을 하나하나 잘라내야 비로소 작품의 형태가 드러난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몇 시간씩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지만, 완성된 자개가 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순간 그동안의 고단함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자개를 대하는 그의 마음은 여전히 처음과 다르지 않다.
전남 광양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통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는 3대째 장도를 만드는 가족이 살고 있다. 장도는 예로부터 선조들이 몸에 지니며 단정함과 기개를 상징하던 전통 칼로, 크기는 작지만 담긴 의미와 제작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장도 한 자루를 완성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무려 177단계에 이른다. 쇠를 다루는 일부터 칼날을 다듬고, 손잡이와 장식을 완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작은 칼 하나에 이처럼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장도가 지닌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박종군 장도장은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전통 장도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움보다도, 장도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질까 봐 더 걱정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업 과정에서 현대식 기계의 도움은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전통 공구만을 사용해 옛 방식 그대로 장도를 만든다.


이제는 두 아들까지 함께 작업에 참여하며, 가족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 장도에 담긴 의미와 정신까지 함께 전하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이들의 이야기는 전통이 과거의 유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개와 장도처럼 오랜 시간과 손길이 쌓여 완성되는 전통 공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우리 곁에서 조용히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