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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탐구 집 연희동 정이삭 건축사 건축상 7관왕 신혼집

son45 2026. 2. 2. 22:28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조용한 골목을 걷다 보면 한 번쯤 시선이 머무는 집이 있다. 주변 주택들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분위기 때문이다.

가파른 지붕 위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이끼 덕분에 멀리서 보면 초록빛 지붕을 얹은 집처럼 보인다. 이 집은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1971년에 지어진 오래된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은 한 해에만 7개의 건축상을 받은 건축가 정이삭의 신혼집이기도 하다.

 

 

정이삭 건축가는 2025년 여러 건축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국내 건축계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주목받은 작업 대부분이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문화재를 다루듯, 오래된 건물이 가진 시간의 흔적을 존중하며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의 신혼집 역시 그런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북쪽 산과 맞닿은 집의 특성상 지붕에 낀 이끼는 관리 대상이기보다 낭만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지붕을 전부 걷어내는 대신 손상된 부분만 보강하고, 50년 전 벽돌 마감도 그대로 살려 집의 원형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집을 고치며 그는 이전 주인의 흔적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함께 작업한 인부들의 이름을 상량문에 남긴 것도 그중 하나다.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집에 살게 된다면, 그 이름들을 통해 이 시절을 상상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집을 ‘새롭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이어받는 것’으로 바라본 셈이다.

외관과 달리 내부는 현재의 생활에 맞게 변화했다. 거실 창을 높여 빛을 충분히 들였고, 낮고 답답했던 천장은 단열을 보강해 시원한 공간으로 바꿨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정이삭 소장이 직접 현장을 오가며 마감 하나하나를 챙겼다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자재를 찾지 못해 제재소에서 나무를 직접 고르고, 가구와 난간, 창살까지 손수 디자인했다. 이는 그가 공공건축뿐 아니라 주거 공간의 섬세한 디테일에도 강한 건축가임을 보여준다.

 

2층 다락방은 그의 또 다른 세계다. 올림픽 호돌이 포스터,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 낡은 만화책처럼 쉽게 지나쳐질 물건들이 가득하다. 재개발로 사라진 동네와 기억을 붙잡아두는 방식이기도 하다.

 

 

“집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이 시간으로 채워가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 신혼집은 과거와 현재가 겹겹이 쌓이며 앞으로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