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하나둘 도시로 떠난 뒤,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향의 산은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린 시절 소를 몰고 나무를 하러 다니던 그 숲길은, 세상에 지쳐 무너졌던 한 중년 남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길이 됐다.

도시에서의 치열한 삶을 정리하고 돌아온 김영구(65) 씨는 멈춰 있던 시간을 천천히 이어 붙이듯, 땅을 고르고 집을 손보며 새로운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집 안에는 어머니의 손길이 남아 있는 장식품과 오래된 장독이 놓여 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는 부모님의 산소가 그의 일상 한가운데 있다. 이 산자락은 그에게 단순한 고향이 아닌, 삶을 다시 붙잡게 해준 시작점이다.


스물네 살에 가장이 됐던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하루 12시간 교대 근무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앗아갔다.
결국 서른한 살, 7년간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고 직장마저 잃었다. 이후 그는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고, 야식집을 운영하고, 쓰레기 매립장에서도 일하며 아들에게 보낼 양육비를 마련했다.

쉼 없이 이어진 11년의 노동과 반복된 갈등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갉아먹었고, 설상가상으로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복막까지 전이됐다는 진단과 함께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을 들은 그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고향 산을 찾았다.


그 선택이 그의 삶을 바꿨다. 늘 곁에 있었지만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자연은 그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내어주었다. 아침이면 숲길을 걸으며 몸을 깨우고, 부모님의 산소에 들러 하루를 시작한다.
산을 오르내리다 만나는 송이와 능이, 봉삼 같은 약재들은 체력을 보충해주는 귀한 선물이자,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작은 즐거움이다.

산에서 얻은 재료들은 그대로 식탁으로 이어진다. 옻과 약재를 넣어 장을 담그고,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겉절이를 무치며 그는 자연이 준 것들로 자신의 몸을 돌본다.
자연의 속도에 맞춰 흘러가는 하루하루는, 한때 삶의 끝에 서 있다고 느꼈던 그에게 다시 균형을 찾아주고 있다. 세상의 소음을 내려놓은 이 산속에서 김영구 씨는 무너졌던 몸과 마음을 천천히 회복하며, 다시는 아프지 않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