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남은 한 줄의 글씨, 화폭 위의 한 획 뒤에는 늘 묵묵히 제 역할을 해온 재료가 있다. 바로 먹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수백 년 동안 기록과 예술의 바탕이 되어온 먹은 사람의 손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완성된다.

그중에서도 소나무를 태워 얻은 그을음으로 만드는 송연먹은 색의 깊이와 질감에서 특별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한국기행 ‘한 우물 전성시대’ 3부는 사라질 뻔했던 이 전통 먹을 다시 되살린 한 장인의 길을 조명한다.
충북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에는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상묵 묵장은 평생을 먹과 함께 보내왔다. 그가 만드는 송연먹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단순한 검정이 아니다.
깊은 어둠 속에 푸른 기운이 은근히 감도는 색으로, 해가 뜨기 직전 잠시 머무는 하늘빛을 닮았다. 오랜 시간 손으로 빚고 기다려야만 나올 수 있는 색이다.

송연먹을 완성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소나무를 태우며 생기는 미세한 그을음을 모으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아교를 섞어 손으로 수만 번을 치대며 형태를 만들고, 다시 오랜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빠르면 1년, 길게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먹으로서 제 모습을 갖춘다. 효율과 속도가 우선되는 시대에 이 작업은 느리고 고된 길이지만, 바로 그 시간이 송연먹의 깊이를 만든다.

하지만 이 전통은 한동안 완전히 끊길 위기에 놓였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을 거치며 먹을 쓰는 이들이 줄어들었고, 산림 보호 정책으로 인해 소나무를 구하는 일 또한 어려워졌다. 결국 송연먹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카본먹이 시장을 대신하게 됐다.
한상묵 묵장은 1988년, 이모부가 운영하던 먹 공장에 들어가며 이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국내에는 송연먹을 제대로 만드는 사람도, 기술을 배울 자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송연 가마를 직접 살폈고, 스스로 가마를 만들어 재현하려 했지만 실패를 반복했다.

전환점은 2002년,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굴된 송연 가마터를 접하면서 찾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전통 방식을 살린 송연 가마를 재현했고, 그렇게 끊어졌던 우리나라 송연먹의 맥을 다시 잇게 됐다.
현재 한상묵 묵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송연먹 제조 기술을 전수받은 장인으로, 오늘도 말없이 먹을 빚으며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취묵향 공방>
주소: 충북 음성군 음성읍 초천로174번길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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