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찾아오면 전남 담양의 창평 마을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춘다. 차가운 공기가 마을을 감싸는 이 계절, 골목 사이로 은근하게 퍼지는 달콤한 냄새가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향기의 근원은 오랜 시간 창평을 대표해 온 전통 먹거리, 쌀엿이다. 이곳에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3대째 쌀엿을 만들어 오고 있는 한 가족이 있으며, 지금도 옛 방식 그대로 엿을 끓이며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집안에서 쌀엿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송희용 씨 부부가 다시 엿 만들기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겨울이면 자연스럽게 접했던 쌀엿의 맛이 점점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아쉬웠고, 그 기억 속 맛을 직접 되살려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창평 쌀엿은 씹는 순간 바삭한 식감이 느껴지면서도 이에 달라붙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단기간에 흉내 낼 수 없는 오랜 경험과 손끝의 감각에서 나온다.
쌀엿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고, 엿이 알맞은 농도에 이를 때까지 하루 종일 불을 살펴야 한다.
불의 세기, 끓이는 시간, 엿의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까지 모든 과정이 사람의 감각에 달려 있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만큼 잠시만 집중력이 흐트러져도 맛과 질감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겨울 내내 이어지는 작업은 체력뿐 아니라 꾸준함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송희용 씨는 딸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외아들이었다. 힘든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는 결국 엿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선택은 개인의 고집을 넘어 가족의 생업이자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사위까지 함께하며 엿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고, 한 집안의 기술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집안에는 쌀엿 외에도 또 하나의 전통 먹거리가 있다. 바로 술을 넣어 발효시킨 반죽으로 만드는 ‘오색 기정떡’이다. 자연 발효로 완성되는 이 떡은 쫀득한 식감이 살아 있으며, 사위에게 전수되어 이제는 집안의 또 다른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기정떡 역시 빠른 결과보다는 기다림과 정성이 필요한 음식이다.
창평에서 만나는 이 가족의 겨울은 단순히 달콤한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다. 사라져 가는 맛을 지키려는 마음, 가족 간의 신뢰, 그리고 시간을 들여 완성되는 정직한 손맛이 어우러진 계절이다. 그래서 이 마을의 겨울은 차갑기보다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 따뜻함을 전해준다.